펩스는 작업자이지만, 클라이언트와 직접 소통하는 일이 많아 에이전시의 역할을 겸할 때도 있습니다.
중간자적 시선과 감각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프로젝트의 보다 큰 그림을 짜고
브랜드와 작업자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며 최고의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EP.5
studio yonke
스튜디오 용케는 광고 영상을 만드는 프로덕션이면서, 동시에 버벌 브랜딩을 정립하거나 캠페인 전략을 짜는 에이전시이기도 하다. 양쪽 모두 의뢰자가 존재하는 일이기에, 오지윤 CD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잘 정립하는 것이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대신 해드립니다'가 아니라,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전문적으로 잘합니다'라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제작 과정에서 주도권을 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고, 결과물은 물론 브랜드와 제작자의 개성까지 고루 잘 드러나는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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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stuido yonke
광고 기획자이자 작가, 영화감독인 오지윤 CD가 운영하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 전략을 짜고 영상을 제작한다. 프로스펙스, 당근, 틱톡, 네이버 등의 브랜드와 협업했다.
김예찬(이하 PEBS) 지금 되게 다양한 걸 하고 계시잖아요. 시작은 광고였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오지윤 대학생 때는 시사 교양 PD 지망생이었어요. 그래서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와중에 제일기획 카피라이터로 먼저 채용이 된 거예요. 언론고시랑 광고 회사에서 보는 채용 시험이 비슷한 부분이 있거든요. 문화 상식, 언어 상식 같은 걸 물어보니까요. 근데도 미련을 못 버려서 맨날 EBS에 시험을 보러 다녔죠. 다큐가 좋아서요.
PEBS 다큐 외에 광고 쪽을 염두하셨던 이유는 뭔가요?
오지윤 카피라이터 선배가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 다큐도 하고 싶고 영화도 하고 싶지? 근데 광고는 그걸 다 할 수 있어.’ 그 말에 확 끌렸던 것 같아요. 마음이 급했던 것도 있고요. 지금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광고가 점점 더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으니까요.
PEBS 제일기획에서는 몇 년이나 계셨나요?
오지윤 한 6년 있었어요. 한창 일할 시기에 나와서 SKT로 갔죠. PD 역할로 유튜브 콘텐츠 기획하고 디지털 광고도 하고 그랬어요. 개인적으로는 혼자 다큐도 찍고요.
PEBS 지금은 한예종에서 영화 공부도 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오지윤 맞아요. 퇴사를 했는데, 이대로 영화를 해보지 않으면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미디액트라고 영화를 가르쳐주는 곳에 가서 단편 영화를 만들었어요. 직접 만들어보니까 영화를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한예종에 들어갔는데, 돈은 벌어야 했어요. 할 줄 아는 게 광고밖에 없으니까 광고를 해야겠다, 싶었고 그렇게 용케를 차리게 된 거죠.
PEBS 내 작품을 만드는 것과 광고를 만드는 건 아무래도 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저희 직원들 중에는 영화를 하던 친구도 있고, 뮤직비디오를 찍다가 자신의 프로덕션을 만들어서 활동하던 감독님도 있고, 저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리더들도 내부적으로는 다 각자의 예술혼을 갖고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하는 일이 결국에는 의뢰업이다 보니까, 아무리 재미있게 작업을 하다가도 한순간에 맥이 빠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CD님은 좀 어떠세요? 그래도 광고에 좀 재미를 느끼시는 편인가요?
오지윤 ‘나는 광고가 너무 좋아, 내 천직이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선배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런 타입은 아니에요. 그분들에게 제가 비슷한 질문을 했었을 때 돌아왔던 답을 들려드리자면,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할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언가를 창작한다고 했을 때, 프로덕션 밸류를 높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원이 들잖아요. 광고는 만드는 사람이 그 자원을 마련할 필요가 없어요. 물론 상업 영화도 투자를 받지만, 투자를 받기까지의 과정이 되게 지난하잖아요. 다른 사람의 돈으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광고의 가장 좋은 점이죠. 여기서 중요한 건 처음부터 이건 ‘그들의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가야한다는 거예요. 광고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요. 이것만 인지하고 간다면 광고를 하면서 상처받을 일도 많지 않을 거고, 건강하게 광고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PEBS 광고랑 영화가 섞일 수 있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서로 좀 동떨어져 있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해요.
오지윤 저는 서로 많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공부하고 나니까 광고 콘티 아이디어를 내는 게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실제로 그런 경험들이 새로운 앵글 같은 걸 구상할 때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그리고 광고랑 영화는 준비 작업이 거의 똑같아요. 아마 영화의 한 씬 정도가 광고에 해당하겠죠. 그러니 광고를 하면 영화에도 당연히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 아시다시피 지금 한국 영화 시장은 정말 불안정해요. 첫 작품과 두 번째 작품 사이가 최소한 5년 이상 걸린다고 해요. 제게 광고는 직업이고, 영화는 새롭게 도전하는 영역이에요. 주변에 선배들도 광고를 절대 내려놓지 말라고 하세요. 두 개가 아예 다른 커리어가 아니라, 커리어가 확장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광고는 ‘영상 창작’의 영역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돈이 모이는 곳이에요. 두 영역을 오가는 창작자가 되고 싶어요.
PEBS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는 거군요.
오지윤 맞아요. 저는 SKT를 그만두려고 마음 먹고 굉장히 폐쇄적인 생활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까 옆 팀에 어떤 분이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에서 소설로 대상을 타신 거예요. ‘저 사람은 지금 내가 버리려고 하는 것을 가진 상태로 뭔가를 이뤘구나’ 싶으면서 ‘나도 그냥 다니면서 새로운 도전을 할 것 그랬나’ ’ 싶더라고요. 물론 영화는 조금 더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긴 하지만요. 왜 훌륭한 소설가는 결국 의사나 기자한테서 나온다고 하잖아요. 누군가의 삶과 죽음, 생생한 이야기 같은 것들을 계속 지켜보게 되니까요. 비슷한 맥락에서 광고를 만드는 일도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고민하는 일이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되면 됐지,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용케가 크리에이티브로 참여한 틱톡 '나의 사적인 트렌드' 캠페인 영상
에이전시이자 프로덕션으로 살아남는 법
PEBS 저희는 아직 저희가 어떤 형태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감독 프로덕션이라고 해야 될 지, PD 프로덕션이라고 해야 될 지, 그래서 계속 찾아보고 있는 중인데요. 용케는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고 계세요?
오지윤 용케도 아직 그런 게 없어요. 밖에서 저희를 볼 때 프로덕션으로 아시는 분들도 있고, 에이전시로 아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냥 ‘뭔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광고가 신기한 게 CD랑 연출이 꼭 구분이 되어야 하거든요. 이유는 일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그만큼 여러 사람이 붙으면 시너지가 나니까. 이 정도인 것 같은데, 하다 보니까 다 겸하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CD 역할에 집중하면서 앞으로는 다양한 감독님들과 일해보고 싶어요. ‘에이전시’ 롤에 집중하는 거죠. 단편적인 영상도 좋지만 큰 캠페인을 짜는 걸 용케가 잘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직은 가리지 않고 해보고 싶어요. 최근에는 브랜드 전략 관련 리서치와 버벌 브랜딩 일을 하기도 했어요. 클라이언트가 용케에 요청하는 일이라면 일단 합니다(웃음). 저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저희도 시험하는 중이랄까요.
PEBS 그럼 보통의 CD는 어떤 일을 하는 거예요? 기존의 방식이라고 한다면.
오지윤 캠페인 전략과 카피를 짜고 그것에 맞는 콘티를 짜요. 그런 다음 감독님과 연출적인 아이디어를 디벨롭 하는 거죠. ‘지금 이 콘티에서 느와르적 요소를 강화해보자’ 같은 식으로요. 물론 사람마다 디테일한 방식은 다를 거예요. 아예 처음부터 연출 감독한테 아이디어를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PEBS 영상에 필요한 콘티나 카피 외에 부가적인 마케팅 전략들도 있잖아요. 그런 것도 보통 같이 준비를 하나요?
오지윤 보통은 그렇죠. 왜냐하면 영상의 카피와 콘티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에 대한 배경이 있을 거잖아요. 크리에이티브 상위에는 마케팅이나 캠페인 전략이 있고, 그 전략을 효과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방식들이 따라오는 거죠. 흔히 말해 IMC(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마케팅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면 어쨌든 설득력이 높아지는 거고, 잘 팔릴 가능성도 높아지는 거니까요. 그 다양한 방식 중 가장 선두에 영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PEBS 저희는 그런 부분이 부족한 것 같아요. 영상 안에 들어갈 알맹이들은 잘 만드는데, 그 앞뒤로 들어가는 설득의 과정들이 아직 좀 어설픈 거죠. 나름대로 한다고는 하는데, 막상 에이전시에서 CD 분들이 준비해오시는 자료들을 보면 ‘역시 다르구나’ 싶어요.
오지윤 결국엔 콘티랑 카피를 파는 일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CD들이 대체로 연기력이 좋죠. PT할 때 콘티 속 상황들을 실감나게 보여줘야 되니까요.
PEBS 실감나게 연기하는 것 외에, PT를 하거나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CD님만의 방식 같은 게 또 있나요?
오지윤 광고가 순수 예술은 아니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CD님도 광고는 결국 솔루션을 주는 거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점을 클라이언트에게 잘 인지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너희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잘해서 여기 온 거야’ 라고요. 광고주와의 관계에서 포지셔닝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그걸 레퍼런스로 준비해 가든, PT에서 연기력이나 말발로 보여주든,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 정립을 잘 해두면 더 유리한 것 같기는 해요. 더 주도권을 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요.
PEBS 이런 것도 궁금해요. 광고를 잘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에도 다양한 것들이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돼서 클라이언트가 펩스랑 작업했던 과정 자체를 만족스러워한다 그러면 되게 만족스럽더라고요. 어떤 경우에는 과정은 좋지 않았지만 조회수 같은 성과 지표가 너무 좋을 수도 있고요. CD님은 어느 부분에 좀 가중치를 많이 두세요?
오지윤 저는 개성을 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펩스 작업들도 보면 딱 봐도 ‘펩스가 한 것 같다’ 싶거든요. 제가 만드는 작업들에도 ‘나’스러움이 많이 묻어나는 것 같은데, 그 개성이라는 게 만드는 사람의 개성도 있지만 브랜드 자체의 개성도 있잖아요. 예를 들면 제가 했던 당근 작업에서는 당근이가 눈으로 빔을 쏴서 사람을 없애버리거든요. 그런 귀여움, 위트 같은 것들이 당근이라는 브랜드와도 닮아 있고 저라는 사람이랑도 닮아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브랜드, 만드는 사람, 캠페인 그 자체, 3가지의 개성이 모두 잘 드러날 때 가장 마음이 충만하죠.
PEBS 공감이 많이 되네요. 저희도 예전에 많이 하던 고민이거든요. 초반에는 너무 잡식으로 일을 해서 개성 강한 스튜디오들 보면 되게 부러웠었어요. 그런데 잡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쌓이다 보니까 나름 ‘펩스다움’이라는 게 조금씩 묻어나더라고요. 여러 갈래로 펼쳐놓은 스펙트럼 안에서 생존에 도움을 줄 근육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 같아서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고, 한편으로 요즘에는 밸런스가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해요. 만드는 사람의 개성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면 그게 과연 광고라고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광고주가 잘 드러나는 게 첫 번째지만, 만드는 사람의 작업 세계도 너무 묻히지는 않게끔 작업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것 같아요.
오지윤 창작자의 개성이 너무 강하면 클라이언트와 오래 관계 맺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특이하고 재미있는 건 보통 한 두 번 하고 말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한다는 것에 공감해요.
*당근 제2회 동네 일거리 박람회 광고 영상. 알바에 대한 편견을 가진 자를 당근이가 아이빔으로 쏴 버리는 위트 있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일에 동기부여를 얻기
PEBS 저도 이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까 관련 서적들을 많이 읽게 되는데, 최근 <자기만의 트랙>이라는 책에서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대표는 직원의 워라밸이 중요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워라밸보다는 성장과 의미, 재미를 뽑더라고요. 그래서 좀 놀라긴 했어요. 나름 직원들의 워라밸을 챙겨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나 싶어서요. PD님은 어떤 가치를 좀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오지윤 성장, 의미, 재미에 더해 저는 돈까지 사실 다 너무 중요한데요. 워라밸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의미를 찾든 성장을 하든 몸과 마음이 쉴 시간이 없으면 그런 것들을 되새김할 에너지가 안 생겨요. 제일기획 다닐 때 직원들이 많이 가는 정신과 상담소가 있었거든요. 거기 가면 우연히 동기도 만나고, 옆 팀 선배도 만나고 그랬어요. 그때가 한 달에 3주 정도를 주말에도 출근하던 시절이었거든요. 택시를 타고 퇴근하면서 터널을 지나가는데, 그 터널 불빛이 수술실 불빛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못 쉬면 진짜 내가 죽거나 누굴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웃음). 다른 어떤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워라밸이 선행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어요.
PEBS 너무 공감합니다. 저도 아이가 셋이다 보니까 워라밸을 의식적으로 챙기려고 노력하는 편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마냥 쉬는 시간을 많이 주는 것만이 좋은 건 또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요즘은 워라밸을 챙겨주는 것 외에 회사 차원에서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만한 장치가 없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지윤 제가 다녔던 회사들을 생각해보면 외부 인사들의 강연 같은 걸 좀 많이 잡아주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날은 되게 편하게 피자랑 맥주 먹으면서 강연 듣고 그랬죠. 그런데 제 생각에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는 건 ‘인정’인 것 같아요. 인정 욕구가 강한 분들이 예술을 하는 것 같거든요. 잘한 건 확실히 잘했다고 말해주고, 못한 건 왜 못했는지 정확한 피드백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혼내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하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거죠.
PEBS 저희는 그래도 감독과 조감독이 수시로 대화하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분기에 한 번 정도 일대일 면담도 하면서 잘한 부분은 칭찬해주고, 조금 부족한 부분은 보완할 수 있도록 이야기 나누고 있죠.
오지윤 저는 일반적으로 감독과 조감독 사이에 그런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펩스는 잘하고 계신 거네요. 그러면 이런 것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건 제가 하고 싶은 건데, 내 작품에 대해 내가 직접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저는 광고도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DVD에 들어가는 감독 코멘터리 영상 같은 걸 자체적으로 찍어볼 생각이에요. 아직 실행하지는 못했지만요. 혹은 영화처럼 GV 같은 걸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PEBS 안 그래도 저희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연말에 오픈 스튜디오 같은 걸 열어서 자기 자리에 각자 맡았던 작품들을 전시하듯이 플레이 시켜놓고 같이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저희가 같이 그런 자리를 만들어도 재미있겠네요.
오지윤 아티스트들은 결국 다 ‘샤라웃(shout out)’ 받고 싶으니까요.
*네이버앱 캠페인 영상과 '나를 움직이는 탐색'이라는 메인 슬로건을 제작했다.
용케가 만들고 싶은 것
PEBS 저희가 PT 하러 가서 늘 강조하는 게 풀 프로덕션의 경험과 다큐멘터리의 경험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팀이 대한민국에 거의 없다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가능하면 다큐멘터리의 영역이 광고 안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사실 되게 운이 좋게도 이번에 토스뱅크와 함께 ‘웹툰노동’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무비랜드에서 GV도 하고 저희로서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는데, 25년에는 이런 방식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우리의 오리지널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작업들을 브랜드와 연결지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오지윤 너무 좋네요. 저의 지향점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용케도 그 두 가지 축을 다 가지고 갈 수 있는 스튜디오가 되었으면 좋겠거든요. 펩스가 평소에 하시는 스타일의 작업을 저도 작게나마 해본 적이 있는데, 정말 힘들면서도 재미있더라고요. 다큐가 확실히 공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 같기는 해요.
PEBS 그래도 이제는 좀 요령이 생겨서 기업형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에는 광고 만드는 과정 비슷하게 제작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21년에 나온 <토스 다큐멘터리ㅣFINTECH - BEHIND THE SIMPLICITY>를 만든 토스 다큐멘터리 팀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해요. 기업 내부에서 임직원들이 이야기하는 방식의 다큐멘터리를 처음 시도했으니까요. 그 작업이 잘 된 덕분에 비슷한 종류의 작업들이 많이 생겨났고, 저희 같은 프로덕션에게도 기회가 오게 됐죠. 그런데 이제는 또 내부자의 인터뷰만으로 끌고 가는 다큐멘터리가 너무 많으니까 저희로서도 다른 방식을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CD님은 다큐를 만든다면 어떤 걸 만들고 싶으세요?
오지윤 저는 늘 틴더랑 다큐를 찍고 싶었어요. 제가 틴더 헤비 유저였거든요. 지금 남자친구도 틴더로 만났는데, 저희처럼 틴더로 만나서 연애하고 혹은 결혼까지 하는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떳떳하게 밝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거예요. 저도 회사 다닐 때 어떤 분이 결혼한다고 하길래, ‘축하한다, 어떻게 만났냐’ 여쭤봤는데 처음엔 소개팅에서 만났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틴더에서 만났다’고 했는데 그분이 갑자기 ‘사실 저도 틴더로 만났어요’ 그러는 거예요. 그때 약간 속상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솔직하게 말해야 이런 문화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잖아요. 실제로 틴더도 우리나라에서 마케팅을 할 때 시선이 곱지 않은 걸 아니까 ‘동네 친구를 만나 보세요’ 이런 식으로 광고를 하거든요. 그래서 다큐를 통해 툭 까놓고 얘기하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요즘 다큐 트렌드가 스피커도 다큐 스토리에 녹아들면서 자기 얘기를 같이 꺼내놓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제가 이 다큐의 스피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PEBS 너무 재미있겠는데요.
오지윤 아라리오 갤러리의 창립자이신 김창일 회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버림받은 것들을 명예 회복시켜 주자.’ 제가 이 말을 정말 좋아하는데, 다큐든 광고든 영화든 다 해당될 수 있는 말이라고 느꼈어요. 버림받은 것까진 아니어도 아직 인기가 없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혹은 오인지 되고 있는 것들의 명예를 높여주는 일이잖아요. 특히 다큐는 더 그렇죠. 그런 관점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PEBS 오랜만에 다큐 이야기 하니까 재미있네요. 다큐 얘기할 기회가 잘 없거든요.
오지윤 모든 콘텐츠의 궁극은 다큐라고 생각해요. 요즘 로맨스나 멜로 영화를 잘 안 보게 되는 이유가 다 다큐의 영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트시그널>이나 <환승연애>나 이런 것들이 다 충족시켜주는데 뭐 하러 잘 못 만든 가짜 이야기를 보겠어요. 그런데 사실 레거시 미디어에서 만드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보통 미학적인 작업을 게을리 하거든요. 그런데 펩스 같은 팀이 다큐 작업을 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미학적으로 잘 가공하다 보면 이 다큐의 버즈량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저는 되게 좋은 것 같아요.
PEBS 저희가 하고 싶은 일이 딱 그거에요. 레거시 미디어에서 다큐멘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저희가 하는 것. 정확하게 이해해주셨네요.
오지윤 왜냐하면 저도 그렇거든요. 광고계의 기존 관습을 조금씩 깨보고 싶어요. 사실 지금은 도전하고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정리가 잘 안 되네요(웃음). 일단은 그냥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보려고요.
The Agency
<The Agency>는 스튜디오 펩스의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펩스는 작업자이지만, 클라이언트와 직접 소통하는 일이 많아 에이전시의 역할을 겸할 때도 있습니다.
중간자적 시선과 감각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프로젝트의 보다 큰 그림을 짜고
브랜드와 작업자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며 최고의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EP.5
studio yonke
스튜디오 용케는 광고 영상을 만드는 프로덕션이면서, 동시에 버벌 브랜딩을 정립하거나 캠페인 전략을 짜는 에이전시이기도 하다. 양쪽 모두 의뢰자가 존재하는 일이기에, 오지윤 CD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잘 정립하는 것이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대신 해드립니다'가 아니라,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전문적으로 잘합니다'라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제작 과정에서 주도권을 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고, 결과물은 물론 브랜드와 제작자의 개성까지 고루 잘 드러나는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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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stuido yonke
광고 기획자이자 작가, 영화감독인 오지윤 CD가 운영하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 전략을 짜고 영상을 제작한다. 프로스펙스, 당근, 틱톡, 네이버 등의 브랜드와 협업했다.
인스타그램
광고에서 영화로, 그리고 다시 광고로
김예찬(이하 PEBS) 지금 되게 다양한 걸 하고 계시잖아요. 시작은 광고였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오지윤 대학생 때는 시사 교양 PD 지망생이었어요. 그래서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와중에 제일기획 카피라이터로 먼저 채용이 된 거예요. 언론고시랑 광고 회사에서 보는 채용 시험이 비슷한 부분이 있거든요. 문화 상식, 언어 상식 같은 걸 물어보니까요. 근데도 미련을 못 버려서 맨날 EBS에 시험을 보러 다녔죠. 다큐가 좋아서요.
PEBS 다큐 외에 광고 쪽을 염두하셨던 이유는 뭔가요?
오지윤 카피라이터 선배가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 다큐도 하고 싶고 영화도 하고 싶지? 근데 광고는 그걸 다 할 수 있어.’ 그 말에 확 끌렸던 것 같아요. 마음이 급했던 것도 있고요. 지금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광고가 점점 더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으니까요.
PEBS 제일기획에서는 몇 년이나 계셨나요?
오지윤 한 6년 있었어요. 한창 일할 시기에 나와서 SKT로 갔죠. PD 역할로 유튜브 콘텐츠 기획하고 디지털 광고도 하고 그랬어요. 개인적으로는 혼자 다큐도 찍고요.
PEBS 지금은 한예종에서 영화 공부도 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오지윤 맞아요. 퇴사를 했는데, 이대로 영화를 해보지 않으면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미디액트라고 영화를 가르쳐주는 곳에 가서 단편 영화를 만들었어요. 직접 만들어보니까 영화를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한예종에 들어갔는데, 돈은 벌어야 했어요. 할 줄 아는 게 광고밖에 없으니까 광고를 해야겠다, 싶었고 그렇게 용케를 차리게 된 거죠.
PEBS 내 작품을 만드는 것과 광고를 만드는 건 아무래도 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저희 직원들 중에는 영화를 하던 친구도 있고, 뮤직비디오를 찍다가 자신의 프로덕션을 만들어서 활동하던 감독님도 있고, 저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리더들도 내부적으로는 다 각자의 예술혼을 갖고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하는 일이 결국에는 의뢰업이다 보니까, 아무리 재미있게 작업을 하다가도 한순간에 맥이 빠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CD님은 좀 어떠세요? 그래도 광고에 좀 재미를 느끼시는 편인가요?
오지윤 ‘나는 광고가 너무 좋아, 내 천직이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선배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런 타입은 아니에요. 그분들에게 제가 비슷한 질문을 했었을 때 돌아왔던 답을 들려드리자면,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할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언가를 창작한다고 했을 때, 프로덕션 밸류를 높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원이 들잖아요. 광고는 만드는 사람이 그 자원을 마련할 필요가 없어요. 물론 상업 영화도 투자를 받지만, 투자를 받기까지의 과정이 되게 지난하잖아요. 다른 사람의 돈으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광고의 가장 좋은 점이죠. 여기서 중요한 건 처음부터 이건 ‘그들의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가야한다는 거예요. 광고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요. 이것만 인지하고 간다면 광고를 하면서 상처받을 일도 많지 않을 거고, 건강하게 광고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PEBS 광고랑 영화가 섞일 수 있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서로 좀 동떨어져 있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해요.
오지윤 저는 서로 많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공부하고 나니까 광고 콘티 아이디어를 내는 게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실제로 그런 경험들이 새로운 앵글 같은 걸 구상할 때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그리고 광고랑 영화는 준비 작업이 거의 똑같아요. 아마 영화의 한 씬 정도가 광고에 해당하겠죠. 그러니 광고를 하면 영화에도 당연히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 아시다시피 지금 한국 영화 시장은 정말 불안정해요. 첫 작품과 두 번째 작품 사이가 최소한 5년 이상 걸린다고 해요. 제게 광고는 직업이고, 영화는 새롭게 도전하는 영역이에요. 주변에 선배들도 광고를 절대 내려놓지 말라고 하세요. 두 개가 아예 다른 커리어가 아니라, 커리어가 확장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광고는 ‘영상 창작’의 영역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돈이 모이는 곳이에요. 두 영역을 오가는 창작자가 되고 싶어요.
PEBS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는 거군요.
오지윤 맞아요. 저는 SKT를 그만두려고 마음 먹고 굉장히 폐쇄적인 생활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까 옆 팀에 어떤 분이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에서 소설로 대상을 타신 거예요. ‘저 사람은 지금 내가 버리려고 하는 것을 가진 상태로 뭔가를 이뤘구나’ 싶으면서 ‘나도 그냥 다니면서 새로운 도전을 할 것 그랬나’ ’ 싶더라고요. 물론 영화는 조금 더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긴 하지만요. 왜 훌륭한 소설가는 결국 의사나 기자한테서 나온다고 하잖아요. 누군가의 삶과 죽음, 생생한 이야기 같은 것들을 계속 지켜보게 되니까요. 비슷한 맥락에서 광고를 만드는 일도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고민하는 일이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되면 됐지,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용케가 크리에이티브로 참여한 틱톡 '나의 사적인 트렌드' 캠페인 영상
에이전시이자 프로덕션으로 살아남는 법
PEBS 저희는 아직 저희가 어떤 형태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감독 프로덕션이라고 해야 될 지, PD 프로덕션이라고 해야 될 지, 그래서 계속 찾아보고 있는 중인데요. 용케는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고 계세요?
오지윤 용케도 아직 그런 게 없어요. 밖에서 저희를 볼 때 프로덕션으로 아시는 분들도 있고, 에이전시로 아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냥 ‘뭔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광고가 신기한 게 CD랑 연출이 꼭 구분이 되어야 하거든요. 이유는 일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그만큼 여러 사람이 붙으면 시너지가 나니까. 이 정도인 것 같은데, 하다 보니까 다 겸하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CD 역할에 집중하면서 앞으로는 다양한 감독님들과 일해보고 싶어요. ‘에이전시’ 롤에 집중하는 거죠. 단편적인 영상도 좋지만 큰 캠페인을 짜는 걸 용케가 잘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직은 가리지 않고 해보고 싶어요. 최근에는 브랜드 전략 관련 리서치와 버벌 브랜딩 일을 하기도 했어요. 클라이언트가 용케에 요청하는 일이라면 일단 합니다(웃음). 저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저희도 시험하는 중이랄까요.
PEBS 그럼 보통의 CD는 어떤 일을 하는 거예요? 기존의 방식이라고 한다면.
오지윤 캠페인 전략과 카피를 짜고 그것에 맞는 콘티를 짜요. 그런 다음 감독님과 연출적인 아이디어를 디벨롭 하는 거죠. ‘지금 이 콘티에서 느와르적 요소를 강화해보자’ 같은 식으로요. 물론 사람마다 디테일한 방식은 다를 거예요. 아예 처음부터 연출 감독한테 아이디어를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PEBS 영상에 필요한 콘티나 카피 외에 부가적인 마케팅 전략들도 있잖아요. 그런 것도 보통 같이 준비를 하나요?
오지윤 보통은 그렇죠. 왜냐하면 영상의 카피와 콘티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에 대한 배경이 있을 거잖아요. 크리에이티브 상위에는 마케팅이나 캠페인 전략이 있고, 그 전략을 효과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방식들이 따라오는 거죠. 흔히 말해 IMC(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마케팅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면 어쨌든 설득력이 높아지는 거고, 잘 팔릴 가능성도 높아지는 거니까요. 그 다양한 방식 중 가장 선두에 영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PEBS 저희는 그런 부분이 부족한 것 같아요. 영상 안에 들어갈 알맹이들은 잘 만드는데, 그 앞뒤로 들어가는 설득의 과정들이 아직 좀 어설픈 거죠. 나름대로 한다고는 하는데, 막상 에이전시에서 CD 분들이 준비해오시는 자료들을 보면 ‘역시 다르구나’ 싶어요.
오지윤 결국엔 콘티랑 카피를 파는 일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CD들이 대체로 연기력이 좋죠. PT할 때 콘티 속 상황들을 실감나게 보여줘야 되니까요.
PEBS 실감나게 연기하는 것 외에, PT를 하거나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CD님만의 방식 같은 게 또 있나요?
오지윤 광고가 순수 예술은 아니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CD님도 광고는 결국 솔루션을 주는 거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점을 클라이언트에게 잘 인지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너희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잘해서 여기 온 거야’ 라고요. 광고주와의 관계에서 포지셔닝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그걸 레퍼런스로 준비해 가든, PT에서 연기력이나 말발로 보여주든,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 정립을 잘 해두면 더 유리한 것 같기는 해요. 더 주도권을 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요.
PEBS 이런 것도 궁금해요. 광고를 잘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에도 다양한 것들이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돼서 클라이언트가 펩스랑 작업했던 과정 자체를 만족스러워한다 그러면 되게 만족스럽더라고요. 어떤 경우에는 과정은 좋지 않았지만 조회수 같은 성과 지표가 너무 좋을 수도 있고요. CD님은 어느 부분에 좀 가중치를 많이 두세요?
오지윤 저는 개성을 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펩스 작업들도 보면 딱 봐도 ‘펩스가 한 것 같다’ 싶거든요. 제가 만드는 작업들에도 ‘나’스러움이 많이 묻어나는 것 같은데, 그 개성이라는 게 만드는 사람의 개성도 있지만 브랜드 자체의 개성도 있잖아요. 예를 들면 제가 했던 당근 작업에서는 당근이가 눈으로 빔을 쏴서 사람을 없애버리거든요. 그런 귀여움, 위트 같은 것들이 당근이라는 브랜드와도 닮아 있고 저라는 사람이랑도 닮아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브랜드, 만드는 사람, 캠페인 그 자체, 3가지의 개성이 모두 잘 드러날 때 가장 마음이 충만하죠.
PEBS 공감이 많이 되네요. 저희도 예전에 많이 하던 고민이거든요. 초반에는 너무 잡식으로 일을 해서 개성 강한 스튜디오들 보면 되게 부러웠었어요. 그런데 잡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쌓이다 보니까 나름 ‘펩스다움’이라는 게 조금씩 묻어나더라고요. 여러 갈래로 펼쳐놓은 스펙트럼 안에서 생존에 도움을 줄 근육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 같아서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고, 한편으로 요즘에는 밸런스가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해요. 만드는 사람의 개성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면 그게 과연 광고라고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광고주가 잘 드러나는 게 첫 번째지만, 만드는 사람의 작업 세계도 너무 묻히지는 않게끔 작업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것 같아요.
오지윤 창작자의 개성이 너무 강하면 클라이언트와 오래 관계 맺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특이하고 재미있는 건 보통 한 두 번 하고 말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한다는 것에 공감해요.
*당근 제2회 동네 일거리 박람회 광고 영상. 알바에 대한 편견을 가진 자를 당근이가 아이빔으로 쏴 버리는 위트 있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일에 동기부여를 얻기
PEBS 저도 이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까 관련 서적들을 많이 읽게 되는데, 최근 <자기만의 트랙>이라는 책에서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대표는 직원의 워라밸이 중요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워라밸보다는 성장과 의미, 재미를 뽑더라고요. 그래서 좀 놀라긴 했어요. 나름 직원들의 워라밸을 챙겨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나 싶어서요. PD님은 어떤 가치를 좀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오지윤 성장, 의미, 재미에 더해 저는 돈까지 사실 다 너무 중요한데요. 워라밸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의미를 찾든 성장을 하든 몸과 마음이 쉴 시간이 없으면 그런 것들을 되새김할 에너지가 안 생겨요. 제일기획 다닐 때 직원들이 많이 가는 정신과 상담소가 있었거든요. 거기 가면 우연히 동기도 만나고, 옆 팀 선배도 만나고 그랬어요. 그때가 한 달에 3주 정도를 주말에도 출근하던 시절이었거든요. 택시를 타고 퇴근하면서 터널을 지나가는데, 그 터널 불빛이 수술실 불빛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못 쉬면 진짜 내가 죽거나 누굴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웃음). 다른 어떤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워라밸이 선행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어요.
PEBS 너무 공감합니다. 저도 아이가 셋이다 보니까 워라밸을 의식적으로 챙기려고 노력하는 편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마냥 쉬는 시간을 많이 주는 것만이 좋은 건 또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요즘은 워라밸을 챙겨주는 것 외에 회사 차원에서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만한 장치가 없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지윤 제가 다녔던 회사들을 생각해보면 외부 인사들의 강연 같은 걸 좀 많이 잡아주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날은 되게 편하게 피자랑 맥주 먹으면서 강연 듣고 그랬죠. 그런데 제 생각에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는 건 ‘인정’인 것 같아요. 인정 욕구가 강한 분들이 예술을 하는 것 같거든요. 잘한 건 확실히 잘했다고 말해주고, 못한 건 왜 못했는지 정확한 피드백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혼내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하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거죠.
PEBS 저희는 그래도 감독과 조감독이 수시로 대화하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분기에 한 번 정도 일대일 면담도 하면서 잘한 부분은 칭찬해주고, 조금 부족한 부분은 보완할 수 있도록 이야기 나누고 있죠.
오지윤 저는 일반적으로 감독과 조감독 사이에 그런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펩스는 잘하고 계신 거네요. 그러면 이런 것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건 제가 하고 싶은 건데, 내 작품에 대해 내가 직접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저는 광고도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DVD에 들어가는 감독 코멘터리 영상 같은 걸 자체적으로 찍어볼 생각이에요. 아직 실행하지는 못했지만요. 혹은 영화처럼 GV 같은 걸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PEBS 안 그래도 저희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연말에 오픈 스튜디오 같은 걸 열어서 자기 자리에 각자 맡았던 작품들을 전시하듯이 플레이 시켜놓고 같이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저희가 같이 그런 자리를 만들어도 재미있겠네요.
오지윤 아티스트들은 결국 다 ‘샤라웃(shout out)’ 받고 싶으니까요.
*네이버앱 캠페인 영상과 '나를 움직이는 탐색'이라는 메인 슬로건을 제작했다.
용케가 만들고 싶은 것
PEBS 저희가 PT 하러 가서 늘 강조하는 게 풀 프로덕션의 경험과 다큐멘터리의 경험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팀이 대한민국에 거의 없다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가능하면 다큐멘터리의 영역이 광고 안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사실 되게 운이 좋게도 이번에 토스뱅크와 함께 ‘웹툰노동’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무비랜드에서 GV도 하고 저희로서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는데, 25년에는 이런 방식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우리의 오리지널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작업들을 브랜드와 연결지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오지윤 너무 좋네요. 저의 지향점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용케도 그 두 가지 축을 다 가지고 갈 수 있는 스튜디오가 되었으면 좋겠거든요. 펩스가 평소에 하시는 스타일의 작업을 저도 작게나마 해본 적이 있는데, 정말 힘들면서도 재미있더라고요. 다큐가 확실히 공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 같기는 해요.
PEBS 그래도 이제는 좀 요령이 생겨서 기업형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에는 광고 만드는 과정 비슷하게 제작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21년에 나온 <토스 다큐멘터리ㅣFINTECH - BEHIND THE SIMPLICITY>를 만든 토스 다큐멘터리 팀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해요. 기업 내부에서 임직원들이 이야기하는 방식의 다큐멘터리를 처음 시도했으니까요. 그 작업이 잘 된 덕분에 비슷한 종류의 작업들이 많이 생겨났고, 저희 같은 프로덕션에게도 기회가 오게 됐죠. 그런데 이제는 또 내부자의 인터뷰만으로 끌고 가는 다큐멘터리가 너무 많으니까 저희로서도 다른 방식을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CD님은 다큐를 만든다면 어떤 걸 만들고 싶으세요?
오지윤 저는 늘 틴더랑 다큐를 찍고 싶었어요. 제가 틴더 헤비 유저였거든요. 지금 남자친구도 틴더로 만났는데, 저희처럼 틴더로 만나서 연애하고 혹은 결혼까지 하는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떳떳하게 밝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거예요. 저도 회사 다닐 때 어떤 분이 결혼한다고 하길래, ‘축하한다, 어떻게 만났냐’ 여쭤봤는데 처음엔 소개팅에서 만났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틴더에서 만났다’고 했는데 그분이 갑자기 ‘사실 저도 틴더로 만났어요’ 그러는 거예요. 그때 약간 속상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솔직하게 말해야 이런 문화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잖아요. 실제로 틴더도 우리나라에서 마케팅을 할 때 시선이 곱지 않은 걸 아니까 ‘동네 친구를 만나 보세요’ 이런 식으로 광고를 하거든요. 그래서 다큐를 통해 툭 까놓고 얘기하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요즘 다큐 트렌드가 스피커도 다큐 스토리에 녹아들면서 자기 얘기를 같이 꺼내놓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제가 이 다큐의 스피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PEBS 너무 재미있겠는데요.
오지윤 아라리오 갤러리의 창립자이신 김창일 회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버림받은 것들을 명예 회복시켜 주자.’ 제가 이 말을 정말 좋아하는데, 다큐든 광고든 영화든 다 해당될 수 있는 말이라고 느꼈어요. 버림받은 것까진 아니어도 아직 인기가 없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혹은 오인지 되고 있는 것들의 명예를 높여주는 일이잖아요. 특히 다큐는 더 그렇죠. 그런 관점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PEBS 오랜만에 다큐 이야기 하니까 재미있네요. 다큐 얘기할 기회가 잘 없거든요.
오지윤 모든 콘텐츠의 궁극은 다큐라고 생각해요. 요즘 로맨스나 멜로 영화를 잘 안 보게 되는 이유가 다 다큐의 영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트시그널>이나 <환승연애>나 이런 것들이 다 충족시켜주는데 뭐 하러 잘 못 만든 가짜 이야기를 보겠어요. 그런데 사실 레거시 미디어에서 만드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보통 미학적인 작업을 게을리 하거든요. 그런데 펩스 같은 팀이 다큐 작업을 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미학적으로 잘 가공하다 보면 이 다큐의 버즈량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저는 되게 좋은 것 같아요.
PEBS 저희가 하고 싶은 일이 딱 그거에요. 레거시 미디어에서 다큐멘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저희가 하는 것. 정확하게 이해해주셨네요.
오지윤 왜냐하면 저도 그렇거든요. 광고계의 기존 관습을 조금씩 깨보고 싶어요. 사실 지금은 도전하고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정리가 잘 안 되네요(웃음). 일단은 그냥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