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스는 작업자이지만, 클라이언트와 직접 소통하는 일이 많아 에이전시의 역할을 겸할 때도 있습니다.
중간자적 시선과 감각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프로젝트의 보다 큰 그림을 짜고
브랜드와 작업자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며 최고의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EP.4
KEEPUSWEIRD
킵어스위어드는 영상 감독들과 전속 계약을 맺고, 그들을 매니지먼트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재미있는 건 작업할 자유가 오롯이 감독들에게 있다는 것. 계약 기간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만약 일을 하고 싶다면 반드시 킵어스위어드와 해야 한다. 되도록 좋은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있도록 도우며 같이 성장하는 것이 이곳의 지향점이기 때문.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건 가장 먼저 투입되어 가장 늦게 일을 마치는 열 명 남짓의 프로듀서들이다. 이들이 감독으로 하여금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펼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올바르게 끌고 나가려 노력하게 '믿고 보는' 킵어스위어드의 작업물이 계속해서 탄생할 수 있는 것 아닐까.
***
about KEEPUSWEIRD
영상 PD들로만 구성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스무 명 남짓한 영상 감독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바밍타이거, 선우정아 등 아티스트 뮤직비디오는 물론 코카콜라, 코오롱스포츠 등 국내외 유수의 브랜드 광고를 제작하고 있다.
이주호(이하 PEBS) 킵어스위어드(KEEPUSWEIRD, 이하 KUW)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승환 저는 영상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에요. 경영학과 졸업하고 경영 컨설팅 쪽으로 일을 하다가 아티스트 베이스로 하는 서비스를 만들어서 스타트업을 차렸는데, 그때 서비스 유저 중 한 사람이 멜트미러 형이었어요. 회사는 없어졌는데 저희 둘은 친해졌고, 같이 팀을 만들게 됐죠. 에이전시 형태로 영상감독님들과 계약을 맺어서 같이 성장하는 프로덕션을 만들어보자는 게 콘셉트였어요.
PEBS 처음부터 명쾌한 방향이 있었군요.
이승환 그랬죠. 그런데 다들 낯설어 하시더라고요. 한국만 유독 프로덕션의 구조가 감독이 중심이 되는 스튜디오 형태로 이루어지거든요. 특히 뮤직비디오 같은 경우에는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PD가 아닌 감독과 직접 소통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처음엔 조금 부침이 있었는데, 한 5년 정도 지나오면서 점차 업계에서 인정을 받게 됐어요. 멜트미러 형과는 서로 생각하는 길이 달라서 찢어지게 됐지만요. 지금은 각자의 영역에서 잘하고 있으니까 응원하고 있어요.
PEBS 처음에 막 시작하셨을 때가 기억나요. 저도 그때 인디밴드 뮤직비디오를 많이 찍을 때였는데, 보통 인디밴드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감독 한 분만 오시는 경우가 대다수잖아요. 그런데 ‘PD라는 직함을 가진 분이 같이 오시네?’ 싶으면서 신선하더라고요.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해서 처음에는 굳이 PD가 필요한가 생각도 했었는데, 어쨌든 중간에서 계속 의견도 조율하시고 필요한 부분들 챙겨주시는 걸 보면서 이런 식의 작업 방식이 장점이 크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이승환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저도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좋은 작업을 만드는 건 결국 감독의 일이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조감독님 선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일의 구조를 만들고 이 구조를 상업화하는 데 더 집중하기로 했어요. 지금 저희 회사의 코어가 된 감독님 5~6명 정도는 초기에 합류한 감독님들인데, 그때 당시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회사의 체계를 갖추려고 노력했죠.
PEBS 당시에 롤모델로 삼았던 회사가 있나요?
이승환 제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덕션 중 하나가 ‘오브젝트&애니멀’이라는 영국 프로덕션이에요. FKA twigs도 원래 이곳 감독 출신이고 김예림의 ‘Yellow’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크리스틴 유안도 소속되어 있죠. 오브젝트&애니멀을 비롯한 해외의 에이전시들은 대부분 이렇게 감독들을 매니지먼트한다는 걸 알고 나서 한국에서 이걸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PEBS 킵어스위어드의 조직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이승환 저 빼고 PD가 열한 분이 더 있어요. 여기에 경영지원팀 한 분이 계시고, 열 일곱 분의 감독님과 전속 계약을 맺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PEBS PD님들이 꽤 많이 계시네요. 보통 PD님들은 상시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세요?
이승환 일이 커질수록 많이 달라지기는 하는데요. 먼저 감독님께 일을 토스하기 전에 저희가 먼저 정리를 해야 되는 부분이 있어요.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크리에이티브의 타당성이라든가, 견적이라든가 이런 걸 따져보고 계약서 쓰고 도장도 찍고 하죠. 그다음에는 일정을 정리해요. 촬영 및 납기 일정을 고려해서 스텝을 구성하고 로케이션 매니저를 섭외해서 장소를 확보해놓는 거예요. 그때부터 감독님이 기획을 짜기 시작하고 저희는 거기에 맞춰서 주어진 예산을 어떻게 배분할 수 있을지 살펴봅니다. 기획안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견적서를 업데이트하고 클라이언트와 논의하는 것도 저희 일이죠. 촬영이 완료되고 편집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정산 파티의 시작이에요 (웃음). 4~5억 짜리 영수증과 세금계산서들이 날아오면 그걸 다 정리하고, 순서대로 입금하고 그러면 사실 일이 제일 늦게 마무리되는 건 PD들이더라고요.
PEBS 보통 러프한 크리에이티브만 가지고는 세부적인 견적을 짜기가 어려운데, 초반부터 견적에 대한 컨펌을 해놓고 들어가는 편이신 것 같네요.
이승환 해외 광고에서는 기본적으로 볼파크(Ballpark) 개념이 있어요. ‘대략적인 액수’라는 뜻인데요. 아주 러프한 기획안만 보내주고 가견적을 알려달라고 하는 거예요. 한 10개 정도 생각하는 그림을 던져놓고서 ‘이거 너희가 하면 얼마 들어?’ 물어보는 거죠. 그럼 저희가 그걸 보고 ‘이거 지미집이 필요할까? 그립팀은?’ 의논을 해서 있는 버전, 없는 버전 두 가지 정도를 보내요. 그러면 클라이언트도 판단을 할 거예요. 이 회사가 제대로 일을 하는 회사인지, 과하게 견적을 부르는 건 아닌지 검토해보는 거죠. 그런 다음 바로 오케이를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예산을 이야기하면서 조율을 해볼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때부터 저희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감독님께 이 작업은 얼마 짜리니까 CG는 이 정도까지는 쓸 수 있고, 그대신 세트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그건 크리에이티브 입장에서 판단해달라는 식으로 의논하는 거예요.
PEBS 그럴 수 있으려면 결국 PD님들도 그림에 대한 감을 다 갖고 계셔야 하는 거네요. 그럼 보통 PD님들이 기획까지도 관여를 하시는 편인가요?
이승환 관여를 한다는 게 어떤 관점이냐에 따라서 다를 것 같은데요. 기획의 방향성이 애먼 데로 가지 않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중에 문제가 될 만한 그림을 짜온다거나 하는 것들은 저희 선에서 말씀을 드리고요. 아직 작업을 많이 안 해본 감독님들 같은 경우에는 기술적인 감각이 부족할 수 있으니까 이건 이렇게 하면 좀 쉽게 갈 수 있다, 경험적인 부분을 많이 공유해드리는 편이죠.
*'I Feel Coke' with Coca-Cola Directed by Ga Produced by KEEPUSWEIRD
함께 성장하기
PEBS 감독님들은 어떻게 컨택을 하시는 거예요?
이승환 발로 직접 뛰는 거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쉽게 보이는 작업들은 이미 유명한 감독님들이 작업한 경우가 많으니까 계속 디깅하는 수밖에 없어요. 대표적으로 지금 KUW 소속인 황현진 감독님은 김도언의 ‘Prophet’ 뮤직비디오를 보고 연락을 드렸는데, 알고 보니 그게 대학교 졸업 작품이더라고요. 그 외에는 아무 작업도 없고요. 이렇게 저희는 막 시작하는 감독님들을 모셔와서 같이 성장하는 걸 선호해요.
PEBS 계약은 어떤 식으로 맺는 건지 궁금해요. 보통 몇 년을 기준으로 계약하나요?
이승환 저희는 4년 계약을 맺어요. 4년이 너무 긴 거 아닌가 싶으실 수도 있는데요. 저희는 보통 신인 감독에 가까운 분들을 픽업해오기 때문에 이 분들이 실제로 수익을 창출하기까지는 2년 정도가 걸려요. 그동안 저희는 계속 투자를 하는 입장인 거죠. 이후 2년 동안 서로 윈윈하면서 좋은 작업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계약 연장을 하게 되는데, 지금 저희 소속 감독님들의 절반 정도는 다 7년 이상 함께 일한 분들이에요.
PEBS 계약 조건도 공개 가능한 선에서 말씀주실 수 있는 부분이 있나요?
이승환 프로젝트 건별로 수익을 나누는 구조인데, 감독님이 놀고 싶으면 4년 내내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아도 상관없어요. 그대신 작업을 할 거면 저희랑 해야 돼요. 그게 거의 유일한 조건이나 마찬가지예요. 저희가 지향하는 게 같이 성장하고 같이 커리어를 만들어나가는 거거든요. 그런 점에서 프로덕션보다는 매니지먼트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괜찮은 작업을 가져왔는데 외부 프로젝트로 일정이 안 되거나 하면 안 되잖아요. 당장 돈이 필요해서 커리어에 도움 안 되는 작업을 할 수도 있고요. 그런 부분을 방지하기 위해 무조건 전속 계약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PEBS 보통 한국에서는 어떤 감독님을 특정하고 일을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이런 시스템을 극복하고 자리잡기까지의 과정도 궁금해요.
이승환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외부적인 부침보다 내부적인 부침이 더 컸어요. 클라이언트 측에서 어떤 감독님을 특정하고 일을 의뢰했는데, 만약 그 감독님 일정이 안 되거나 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다른 감독님께라도 넘겨드리면 좋잖아요. 그런데 그 감독님 입장에서는 나를 보고 들어온 일인데 다른 사람이 하는 게 싫은 거예요. 이런 부분을 설득하는 데만 1년 넘게 걸렸던 것 같아요. 외부적으로는 시간이 해결해준 게 커요. 몇 번 클라이언트가 지정한 감독님 일정이 안 돼서 저희가 다른 감독님들을 소개해 드렸는데, 서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니까 나중에는 클라이언트 측에서도 ‘이런 프로젝트가 있는데 괜찮은 감독님들 좀 추천해달라’면서 의뢰를 하시더라고요. 종종 여러 개의 선택지를 갖고 싶어하는 클라이언트도 있는데, 한 곳에서 여러 명의 감독님을 다 컨택하고 살펴볼 수 있으니까 편하다고 느끼기도 하시죠.
PEBS 클라이언트나 감독들은 각자가 하고 싶은 게 명확하고, 그런데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그 중간에서 역할을 하시면서 힘든 부분은 없으세요?
이승환 아마 모든 PD님들이 공감을 하실 부분인 것 같은데, 양쪽 입장을 너무 잘 알아서 힘든 게 있어요. 클라이언트가 왜 이걸 원하는지도 알겠고, 감독님들이 왜 이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려운지도 알겠는 거죠. 저희도 참 난감할 때가 많아요. 그와중에 또 돈을 만지는 입장이다 보니까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이걸 즐겨야 PD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감독님들 하는 걸 보면 저는 못하겠더라고요. 아무래도 광고대행사를 같이 하고 있다 보니까 기획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봐야 로그라인이나 시놉시스 정도예요. 그것만 해도 저는 충분히 힘들거든요. 제가 재능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그림들을 가지고 올 때 제일 쾌감을 느껴요.
PEBS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PD의 역량 같은 게 있을까요? 아무래도 커뮤니케이션 스킬 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요.
이승환 저희 PD들한테 항상 얘기하는 건 ‘다른 누군가의 소통 방식을 흉내내지 말라’는 거예요. 저희 PD들도 보면 먼저 친해진 다음에 형, 동생 하면서 격의없이 다가가는 스타일도 있고,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처럼 세심하게 챙기는 스타일도 있고, 선을 딱 그어놓고 곁을 안 주면서 일만 하는 스타일도 있거든요. 소통에 정답은 없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나한테 맞는 클라이언트나 스텝들 성향도 파악할 수 있고, 독립을 해서도 나름의 개성을 만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SAN SAN GEAR X SAMSUNG LIONS [BORN IN BLUE] CAMPAIGN VIDEO Directed by Jan'Qui Produced by KEEPUSWEIRD
외연의 확장
PEBS 요즘에는 어떤 작업들 하고 계세요?
이승환 스튜디오펩스는 다큐 기반 작업들 많이 하시잖아요. 저희도 요즘 커머셜 다큐를 시도해보고 있는데, 쉽지 않아요. 광고나 뮤직비디오 쪽 PD로 일하는 것과 다큐 PD로 일하는 건 또 다른 문제더라고요.
PEBS 회차를 정하기가 어렵죠. 예를 제주도에서 오는 출연자인데 갑자기 비행기가 안 떠서 못 오면 회차는 또 늘어나게 되는 거고, 그러면 예산도 늘어날 수밖에 없고. 매번 다른 상황이 생기니까 익숙해지지가 않는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고요. 레퍼런스가 있어도 다큐는 출연자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에 따라 결과물이 너무 달라질 수 있는 장르다 보니까 저희도 부침이 계속 있습니다. 그와중에 어떻게 하면 다큐에 광고적인 부분을 접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이승환 저희도 영상에 있어서 계속 도전을 해보고 있는게 영화를 광고로 만드는 것과 다큐로 광고를 만드는 것, 이 두 가지예요. 예를 들면 브랜드에 너희 제품하고 제작비를 지원해주면 그걸 가지고 단편 영화를 찍겠다고 제안을 해보는 거죠. 그렇게 해서 만약 영화제에서 상이라도 타면 브랜드 입장에서도 좋은 거잖아요. 다큐 같은 걸 해본 적 없는 브랜드에 다큐 기획서를 보내보기도 하고, 요즘에는 그런 식의 시도를 해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PEBS 내부에서 먼저 기획하고 브랜드에 제안하는 비율은 높은 편인가요?
이승환 계속 늘어나는 중이에요. 클라이언트 잡에서 재미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때 진짜 재미있는 게 나올 가능성이 크잖아요. 앞으로 더 다양한 일들을 하려면 주도적인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PEBS 초기의 KUW와 비교하면 확실이 지금의 KUW가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요.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이승환 사실 과거에도 저희는 프로덕션이 아닌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라고 계속 얘길 해왔는데요. 지금은 훨씬 더 그쪽에 맞는 방향으로 확장을 해서 총 5개 회사가 같이 움직이는 회사가 됐어요. 먼저 영상 프로덕션의 업무를 하는 KUW가 있고요. 색보정을 전문으로 하는 카프라 컬러랩과 밀접하게 협업해 콘텐츠의 퀄리티를 향상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광고대행사도 함께 운영을 하고 있고, 재미있는 건 뭐든 한다는 생각으로 콘서트 등 공연이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 캠프 같은 것도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PEBS 초창기부터 이렇게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할 생각을 갖고 계셨던 거군요.
이승환 맞아요. 막연하게 상상만 하던 모습이긴 했는데, 다행히 올해부터는 꿈꾸던 길을 더 본격적으로 걷게 된 것 같아요. 저희가 뮤직비디오로 케이팝 시장에 안착한 건 2020년 즈음인데, 시장 자체가 너무 레드오션이다 보니까 다른 쪽으로 활로를 뚫어보자 싶었던 게 있어요. 그래서 G.E.N.E이라는 광고대행사를 만들었고, 뉴진스가 나오는 나이키 에어맥스 광고를 찍게 됐죠. 그게 좀 반응이 오면서 홍보 차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그때 좀 좋은 성과들이 있었어요. 예전부터 저희가 롤모델로 바라봤던 회사 중 하나인 ‘세카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거예요. 거기야말로 크리에이티브한 건 뭐든지 하는 회사인데, 다행히 합이 잘 맞아서 지금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고 있어요. 내년 상반기에는 뉴욕에 같이 일할 수 있는 오피스를 만들자고 한 상황입니다.
PEBS 확장을 꾀한 다른 이유도 있었나요?
이승환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생계와 직결이 되면서 점점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일을 계속 재미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에 스티브 나카무라라는 일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만나서 일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일하는 방식이나 만들어내는 작업물 같은 걸 보니까 광고가 재밌어지고 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광고대행사를 만들었죠. 광고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이면 뭐든 하고 싶은 마음이라, 앞으로도 또 어떤 회사를 만들지 모르겠어요. 스타트업처럼 작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 계속 생겨나지 않을까 싶어요.
PEBS 말씀하신 부분은 저희도 많이 공감이 되네요. 나름 좀 새로운 방법으로 재미를 찾으려고 이렇게 에디토리얼 콘텐츠도 만들고 사람들도 만나는 거거든요.
이승환 개인적으로는 저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해외의 유사한 팀들을 찾아서 일단 만나보고 이야기 나눈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나 이번에 도쿄 가는데 하루만 시간 내줄래? 우리 회사 소개도 해주고 인사도 나누고 싶어’ 이런 식으로 무작정 메일이나 DM을 보내는 거죠. 그런데 생각보다 다들 호의적이었어요. 그렇게 여러 팀들을 만나보니까 한국의 작업 분위기가 어떤지 조금 보이더라고요. 한국의 작업자들은 업계의 룰을 되게 잘 지켜요. 그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거든요. 안전한 방식을 택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희는 좀 덜 안전하거나 돈이 안 되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는 쪽으로 노선을 정했어요. 그렇다고 공격적으로 돈을 들여서 사업을 확장한 것도 아니에요. 비전이 맞는 사람들끼리 조금씩 모이다 보니까 시너지가 나고 환경을 만들게 된 거죠.
PEBS 여러 갈래로 확장되는 와중에도 지키고 싶은 뿌리 같은 게 있다면 뭘까요? 스튜디오펩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게 다큐거든요.
이승환 글쎄요. 사실 저희는 뿌리라고 할 만한 게 없어요. 영상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영상이 아니어도 어쨌든 각자가 전공했거나 깊이 파고 있는 분야가 있을 거 아니에요. 자신만의 보물 상자에서 멋진 걸 꺼내듯이 각기 다른 베이스나 취향을 작업에 묻혀낼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PEBS 그럼 현 시점에서 바라본 KUW의 지향점은 어떤 걸까요?
이승환 옛날부터 누가 ‘어떤 회사가 되고 싶어?’ 물어보면 늘 이렇게 대답했었어요. 누군가 ‘영상이고 광고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일단 멋있는 걸 하고 싶어! 어떻게 해야 되지?’ 생각할 때 ‘일단 KUW한테 가서 물어봐!’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러려면 좋은 작업을 보는 눈의 감각을 계속 길러야 하고 각자의 취향이 녹슬지 않도록 만들어야겠죠. 일희일비하지 말고 좋아하는 걸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The Agency
<The Agency>는 스튜디오 펩스의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펩스는 작업자이지만, 클라이언트와 직접 소통하는 일이 많아 에이전시의 역할을 겸할 때도 있습니다.
중간자적 시선과 감각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프로젝트의 보다 큰 그림을 짜고
브랜드와 작업자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며 최고의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EP.4
KEEPUSWEIRD
킵어스위어드는 영상 감독들과 전속 계약을 맺고, 그들을 매니지먼트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재미있는 건 작업할 자유가 오롯이 감독들에게 있다는 것. 계약 기간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만약 일을 하고 싶다면 반드시 킵어스위어드와 해야 한다. 되도록 좋은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있도록 도우며 같이 성장하는 것이 이곳의 지향점이기 때문.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건 가장 먼저 투입되어 가장 늦게 일을 마치는 열 명 남짓의 프로듀서들이다. 이들이 감독으로 하여금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펼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올바르게 끌고 나가려 노력하게 '믿고 보는' 킵어스위어드의 작업물이 계속해서 탄생할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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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KEEPUSWEIRD
영상 PD들로만 구성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스무 명 남짓한 영상 감독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바밍타이거, 선우정아 등 아티스트 뮤직비디오는 물론 코카콜라, 코오롱스포츠 등 국내외 유수의 브랜드 광고를 제작하고 있다.
웹 사이트 인스타그램
한국에 없던 에이전시
이주호(이하 PEBS) 킵어스위어드(KEEPUSWEIRD, 이하 KUW)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승환 저는 영상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에요. 경영학과 졸업하고 경영 컨설팅 쪽으로 일을 하다가 아티스트 베이스로 하는 서비스를 만들어서 스타트업을 차렸는데, 그때 서비스 유저 중 한 사람이 멜트미러 형이었어요. 회사는 없어졌는데 저희 둘은 친해졌고, 같이 팀을 만들게 됐죠. 에이전시 형태로 영상감독님들과 계약을 맺어서 같이 성장하는 프로덕션을 만들어보자는 게 콘셉트였어요.
PEBS 처음부터 명쾌한 방향이 있었군요.
이승환 그랬죠. 그런데 다들 낯설어 하시더라고요. 한국만 유독 프로덕션의 구조가 감독이 중심이 되는 스튜디오 형태로 이루어지거든요. 특히 뮤직비디오 같은 경우에는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PD가 아닌 감독과 직접 소통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처음엔 조금 부침이 있었는데, 한 5년 정도 지나오면서 점차 업계에서 인정을 받게 됐어요. 멜트미러 형과는 서로 생각하는 길이 달라서 찢어지게 됐지만요. 지금은 각자의 영역에서 잘하고 있으니까 응원하고 있어요.
PEBS 처음에 막 시작하셨을 때가 기억나요. 저도 그때 인디밴드 뮤직비디오를 많이 찍을 때였는데, 보통 인디밴드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감독 한 분만 오시는 경우가 대다수잖아요. 그런데 ‘PD라는 직함을 가진 분이 같이 오시네?’ 싶으면서 신선하더라고요.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해서 처음에는 굳이 PD가 필요한가 생각도 했었는데, 어쨌든 중간에서 계속 의견도 조율하시고 필요한 부분들 챙겨주시는 걸 보면서 이런 식의 작업 방식이 장점이 크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이승환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저도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좋은 작업을 만드는 건 결국 감독의 일이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조감독님 선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일의 구조를 만들고 이 구조를 상업화하는 데 더 집중하기로 했어요. 지금 저희 회사의 코어가 된 감독님 5~6명 정도는 초기에 합류한 감독님들인데, 그때 당시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회사의 체계를 갖추려고 노력했죠.
PEBS 당시에 롤모델로 삼았던 회사가 있나요?
이승환 제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덕션 중 하나가 ‘오브젝트&애니멀’이라는 영국 프로덕션이에요. FKA twigs도 원래 이곳 감독 출신이고 김예림의 ‘Yellow’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크리스틴 유안도 소속되어 있죠. 오브젝트&애니멀을 비롯한 해외의 에이전시들은 대부분 이렇게 감독들을 매니지먼트한다는 걸 알고 나서 한국에서 이걸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PEBS 킵어스위어드의 조직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이승환 저 빼고 PD가 열한 분이 더 있어요. 여기에 경영지원팀 한 분이 계시고, 열 일곱 분의 감독님과 전속 계약을 맺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PEBS PD님들이 꽤 많이 계시네요. 보통 PD님들은 상시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세요?
이승환 일이 커질수록 많이 달라지기는 하는데요. 먼저 감독님께 일을 토스하기 전에 저희가 먼저 정리를 해야 되는 부분이 있어요.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크리에이티브의 타당성이라든가, 견적이라든가 이런 걸 따져보고 계약서 쓰고 도장도 찍고 하죠. 그다음에는 일정을 정리해요. 촬영 및 납기 일정을 고려해서 스텝을 구성하고 로케이션 매니저를 섭외해서 장소를 확보해놓는 거예요. 그때부터 감독님이 기획을 짜기 시작하고 저희는 거기에 맞춰서 주어진 예산을 어떻게 배분할 수 있을지 살펴봅니다. 기획안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견적서를 업데이트하고 클라이언트와 논의하는 것도 저희 일이죠. 촬영이 완료되고 편집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정산 파티의 시작이에요 (웃음). 4~5억 짜리 영수증과 세금계산서들이 날아오면 그걸 다 정리하고, 순서대로 입금하고 그러면 사실 일이 제일 늦게 마무리되는 건 PD들이더라고요.
PEBS 보통 러프한 크리에이티브만 가지고는 세부적인 견적을 짜기가 어려운데, 초반부터 견적에 대한 컨펌을 해놓고 들어가는 편이신 것 같네요.
이승환 해외 광고에서는 기본적으로 볼파크(Ballpark) 개념이 있어요. ‘대략적인 액수’라는 뜻인데요. 아주 러프한 기획안만 보내주고 가견적을 알려달라고 하는 거예요. 한 10개 정도 생각하는 그림을 던져놓고서 ‘이거 너희가 하면 얼마 들어?’ 물어보는 거죠. 그럼 저희가 그걸 보고 ‘이거 지미집이 필요할까? 그립팀은?’ 의논을 해서 있는 버전, 없는 버전 두 가지 정도를 보내요. 그러면 클라이언트도 판단을 할 거예요. 이 회사가 제대로 일을 하는 회사인지, 과하게 견적을 부르는 건 아닌지 검토해보는 거죠. 그런 다음 바로 오케이를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예산을 이야기하면서 조율을 해볼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때부터 저희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감독님께 이 작업은 얼마 짜리니까 CG는 이 정도까지는 쓸 수 있고, 그대신 세트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그건 크리에이티브 입장에서 판단해달라는 식으로 의논하는 거예요.
PEBS 그럴 수 있으려면 결국 PD님들도 그림에 대한 감을 다 갖고 계셔야 하는 거네요. 그럼 보통 PD님들이 기획까지도 관여를 하시는 편인가요?
이승환 관여를 한다는 게 어떤 관점이냐에 따라서 다를 것 같은데요. 기획의 방향성이 애먼 데로 가지 않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중에 문제가 될 만한 그림을 짜온다거나 하는 것들은 저희 선에서 말씀을 드리고요. 아직 작업을 많이 안 해본 감독님들 같은 경우에는 기술적인 감각이 부족할 수 있으니까 이건 이렇게 하면 좀 쉽게 갈 수 있다, 경험적인 부분을 많이 공유해드리는 편이죠.
*'I Feel Coke' with Coca-Cola Directed by Ga Produced by KEEPUSWEIRD
함께 성장하기
PEBS 감독님들은 어떻게 컨택을 하시는 거예요?
이승환 발로 직접 뛰는 거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쉽게 보이는 작업들은 이미 유명한 감독님들이 작업한 경우가 많으니까 계속 디깅하는 수밖에 없어요. 대표적으로 지금 KUW 소속인 황현진 감독님은 김도언의 ‘Prophet’ 뮤직비디오를 보고 연락을 드렸는데, 알고 보니 그게 대학교 졸업 작품이더라고요. 그 외에는 아무 작업도 없고요. 이렇게 저희는 막 시작하는 감독님들을 모셔와서 같이 성장하는 걸 선호해요.
PEBS 계약은 어떤 식으로 맺는 건지 궁금해요. 보통 몇 년을 기준으로 계약하나요?
이승환 저희는 4년 계약을 맺어요. 4년이 너무 긴 거 아닌가 싶으실 수도 있는데요. 저희는 보통 신인 감독에 가까운 분들을 픽업해오기 때문에 이 분들이 실제로 수익을 창출하기까지는 2년 정도가 걸려요. 그동안 저희는 계속 투자를 하는 입장인 거죠. 이후 2년 동안 서로 윈윈하면서 좋은 작업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계약 연장을 하게 되는데, 지금 저희 소속 감독님들의 절반 정도는 다 7년 이상 함께 일한 분들이에요.
PEBS 계약 조건도 공개 가능한 선에서 말씀주실 수 있는 부분이 있나요?
이승환 프로젝트 건별로 수익을 나누는 구조인데, 감독님이 놀고 싶으면 4년 내내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아도 상관없어요. 그대신 작업을 할 거면 저희랑 해야 돼요. 그게 거의 유일한 조건이나 마찬가지예요. 저희가 지향하는 게 같이 성장하고 같이 커리어를 만들어나가는 거거든요. 그런 점에서 프로덕션보다는 매니지먼트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괜찮은 작업을 가져왔는데 외부 프로젝트로 일정이 안 되거나 하면 안 되잖아요. 당장 돈이 필요해서 커리어에 도움 안 되는 작업을 할 수도 있고요. 그런 부분을 방지하기 위해 무조건 전속 계약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PEBS 보통 한국에서는 어떤 감독님을 특정하고 일을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이런 시스템을 극복하고 자리잡기까지의 과정도 궁금해요.
이승환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외부적인 부침보다 내부적인 부침이 더 컸어요. 클라이언트 측에서 어떤 감독님을 특정하고 일을 의뢰했는데, 만약 그 감독님 일정이 안 되거나 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다른 감독님께라도 넘겨드리면 좋잖아요. 그런데 그 감독님 입장에서는 나를 보고 들어온 일인데 다른 사람이 하는 게 싫은 거예요. 이런 부분을 설득하는 데만 1년 넘게 걸렸던 것 같아요. 외부적으로는 시간이 해결해준 게 커요. 몇 번 클라이언트가 지정한 감독님 일정이 안 돼서 저희가 다른 감독님들을 소개해 드렸는데, 서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니까 나중에는 클라이언트 측에서도 ‘이런 프로젝트가 있는데 괜찮은 감독님들 좀 추천해달라’면서 의뢰를 하시더라고요. 종종 여러 개의 선택지를 갖고 싶어하는 클라이언트도 있는데, 한 곳에서 여러 명의 감독님을 다 컨택하고 살펴볼 수 있으니까 편하다고 느끼기도 하시죠.
PEBS 클라이언트나 감독들은 각자가 하고 싶은 게 명확하고, 그런데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그 중간에서 역할을 하시면서 힘든 부분은 없으세요?
이승환 아마 모든 PD님들이 공감을 하실 부분인 것 같은데, 양쪽 입장을 너무 잘 알아서 힘든 게 있어요. 클라이언트가 왜 이걸 원하는지도 알겠고, 감독님들이 왜 이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려운지도 알겠는 거죠. 저희도 참 난감할 때가 많아요. 그와중에 또 돈을 만지는 입장이다 보니까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이걸 즐겨야 PD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감독님들 하는 걸 보면 저는 못하겠더라고요. 아무래도 광고대행사를 같이 하고 있다 보니까 기획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봐야 로그라인이나 시놉시스 정도예요. 그것만 해도 저는 충분히 힘들거든요. 제가 재능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그림들을 가지고 올 때 제일 쾌감을 느껴요.
PEBS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PD의 역량 같은 게 있을까요? 아무래도 커뮤니케이션 스킬 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요.
이승환 저희 PD들한테 항상 얘기하는 건 ‘다른 누군가의 소통 방식을 흉내내지 말라’는 거예요. 저희 PD들도 보면 먼저 친해진 다음에 형, 동생 하면서 격의없이 다가가는 스타일도 있고,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처럼 세심하게 챙기는 스타일도 있고, 선을 딱 그어놓고 곁을 안 주면서 일만 하는 스타일도 있거든요. 소통에 정답은 없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나한테 맞는 클라이언트나 스텝들 성향도 파악할 수 있고, 독립을 해서도 나름의 개성을 만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SAN SAN GEAR X SAMSUNG LIONS [BORN IN BLUE] CAMPAIGN VIDEO Directed by Jan'Qui Produced by KEEPUSWEIRD
외연의 확장
PEBS 요즘에는 어떤 작업들 하고 계세요?
이승환 스튜디오펩스는 다큐 기반 작업들 많이 하시잖아요. 저희도 요즘 커머셜 다큐를 시도해보고 있는데, 쉽지 않아요. 광고나 뮤직비디오 쪽 PD로 일하는 것과 다큐 PD로 일하는 건 또 다른 문제더라고요.
PEBS 회차를 정하기가 어렵죠. 예를 제주도에서 오는 출연자인데 갑자기 비행기가 안 떠서 못 오면 회차는 또 늘어나게 되는 거고, 그러면 예산도 늘어날 수밖에 없고. 매번 다른 상황이 생기니까 익숙해지지가 않는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고요. 레퍼런스가 있어도 다큐는 출연자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에 따라 결과물이 너무 달라질 수 있는 장르다 보니까 저희도 부침이 계속 있습니다. 그와중에 어떻게 하면 다큐에 광고적인 부분을 접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이승환 저희도 영상에 있어서 계속 도전을 해보고 있는게 영화를 광고로 만드는 것과 다큐로 광고를 만드는 것, 이 두 가지예요. 예를 들면 브랜드에 너희 제품하고 제작비를 지원해주면 그걸 가지고 단편 영화를 찍겠다고 제안을 해보는 거죠. 그렇게 해서 만약 영화제에서 상이라도 타면 브랜드 입장에서도 좋은 거잖아요. 다큐 같은 걸 해본 적 없는 브랜드에 다큐 기획서를 보내보기도 하고, 요즘에는 그런 식의 시도를 해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PEBS 내부에서 먼저 기획하고 브랜드에 제안하는 비율은 높은 편인가요?
이승환 계속 늘어나는 중이에요. 클라이언트 잡에서 재미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때 진짜 재미있는 게 나올 가능성이 크잖아요. 앞으로 더 다양한 일들을 하려면 주도적인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PEBS 초기의 KUW와 비교하면 확실이 지금의 KUW가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요.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이승환 사실 과거에도 저희는 프로덕션이 아닌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라고 계속 얘길 해왔는데요. 지금은 훨씬 더 그쪽에 맞는 방향으로 확장을 해서 총 5개 회사가 같이 움직이는 회사가 됐어요. 먼저 영상 프로덕션의 업무를 하는 KUW가 있고요. 색보정을 전문으로 하는 카프라 컬러랩과 밀접하게 협업해 콘텐츠의 퀄리티를 향상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광고대행사도 함께 운영을 하고 있고, 재미있는 건 뭐든 한다는 생각으로 콘서트 등 공연이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 캠프 같은 것도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PEBS 초창기부터 이렇게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할 생각을 갖고 계셨던 거군요.
이승환 맞아요. 막연하게 상상만 하던 모습이긴 했는데, 다행히 올해부터는 꿈꾸던 길을 더 본격적으로 걷게 된 것 같아요. 저희가 뮤직비디오로 케이팝 시장에 안착한 건 2020년 즈음인데, 시장 자체가 너무 레드오션이다 보니까 다른 쪽으로 활로를 뚫어보자 싶었던 게 있어요. 그래서 G.E.N.E이라는 광고대행사를 만들었고, 뉴진스가 나오는 나이키 에어맥스 광고를 찍게 됐죠. 그게 좀 반응이 오면서 홍보 차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그때 좀 좋은 성과들이 있었어요. 예전부터 저희가 롤모델로 바라봤던 회사 중 하나인 ‘세카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거예요. 거기야말로 크리에이티브한 건 뭐든지 하는 회사인데, 다행히 합이 잘 맞아서 지금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고 있어요. 내년 상반기에는 뉴욕에 같이 일할 수 있는 오피스를 만들자고 한 상황입니다.
PEBS 확장을 꾀한 다른 이유도 있었나요?
이승환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생계와 직결이 되면서 점점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일을 계속 재미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에 스티브 나카무라라는 일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만나서 일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일하는 방식이나 만들어내는 작업물 같은 걸 보니까 광고가 재밌어지고 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광고대행사를 만들었죠. 광고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이면 뭐든 하고 싶은 마음이라, 앞으로도 또 어떤 회사를 만들지 모르겠어요. 스타트업처럼 작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 계속 생겨나지 않을까 싶어요.
PEBS 말씀하신 부분은 저희도 많이 공감이 되네요. 나름 좀 새로운 방법으로 재미를 찾으려고 이렇게 에디토리얼 콘텐츠도 만들고 사람들도 만나는 거거든요.
이승환 개인적으로는 저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해외의 유사한 팀들을 찾아서 일단 만나보고 이야기 나눈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나 이번에 도쿄 가는데 하루만 시간 내줄래? 우리 회사 소개도 해주고 인사도 나누고 싶어’ 이런 식으로 무작정 메일이나 DM을 보내는 거죠. 그런데 생각보다 다들 호의적이었어요. 그렇게 여러 팀들을 만나보니까 한국의 작업 분위기가 어떤지 조금 보이더라고요. 한국의 작업자들은 업계의 룰을 되게 잘 지켜요. 그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거든요. 안전한 방식을 택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희는 좀 덜 안전하거나 돈이 안 되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는 쪽으로 노선을 정했어요. 그렇다고 공격적으로 돈을 들여서 사업을 확장한 것도 아니에요. 비전이 맞는 사람들끼리 조금씩 모이다 보니까 시너지가 나고 환경을 만들게 된 거죠.
PEBS 여러 갈래로 확장되는 와중에도 지키고 싶은 뿌리 같은 게 있다면 뭘까요? 스튜디오펩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게 다큐거든요.
이승환 글쎄요. 사실 저희는 뿌리라고 할 만한 게 없어요. 영상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영상이 아니어도 어쨌든 각자가 전공했거나 깊이 파고 있는 분야가 있을 거 아니에요. 자신만의 보물 상자에서 멋진 걸 꺼내듯이 각기 다른 베이스나 취향을 작업에 묻혀낼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PEBS 그럼 현 시점에서 바라본 KUW의 지향점은 어떤 걸까요?
이승환 옛날부터 누가 ‘어떤 회사가 되고 싶어?’ 물어보면 늘 이렇게 대답했었어요. 누군가 ‘영상이고 광고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일단 멋있는 걸 하고 싶어! 어떻게 해야 되지?’ 생각할 때 ‘일단 KUW한테 가서 물어봐!’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러려면 좋은 작업을 보는 눈의 감각을 계속 길러야 하고 각자의 취향이 녹슬지 않도록 만들어야겠죠. 일희일비하지 말고 좋아하는 걸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